
안치행의 프로듀스 하에 1978년부터 1980년까지 3년간 공식적으로 5장의 트로트 풍이 가미된 가요 앨범을 더 내면서 인기 가수 대열에 올랐다. 가요 프로그램은 물론 공개 코미디 등 TV 예능에도 자주 모습을 비추면서, 매력적인 보이스와 잘생긴 얼굴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.
그러던 1981년 윤수일은 자신의 이름을 내건 윤수일밴드를 이끌고 록 냄새가 물씬 풍기는 윤수일밴드 1집을 발표한다.
이때부터 그의 음악인생의 정점을 달리는 시기가 시작되는데, 번안곡 2곡[7]을 제외한 나머지 곡들은 모두 윤수일의 자작곡이었다.
윤수일의 자작곡이 대부분이지만 솔로 가수의 백밴드가 아닌 밴드 지향적인 음악으로 지금 들어도 근사한 기타 리프를 선보이는 떠나지 마와 제2의 고향 그리고 비 같은 넘버에서는 블루지한 긴 기타 솔로가 들어있다. 제2의 고향은 1967년 미국에서 인기를 끈 "TV" 락 밴드 몽키즈의 "Pleasant Valley Sunday"를 연상시키기도 한다.
이 음반은 현재도 윤수일 최고의 명반으로 꼽힌다.
이듬해 1982년 아파트가 담겨있는 2집이 발매되었고 이 노래가 전국적인 대히트를 치면서 시대를 넘어선 최고 인기 가수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. 당시는 막 잠실에 우후죽순 아파트가 들어서기 시작하던 시기였다. 이 노래의 가사 중 나오는 한강의 다리(대교)는 '잠실대교'라고 본인이 인터뷰에서 밝힘. 이 노래 역시 윤수일 본인이 작사 작곡한 노래이며 친구의 이야기를 담았다고 한다. 군대에 갔던 친구가 돌아와 보니 여자친구 가족은 그에게 연락도 없이 외국으로 이민 간 상태였고 아파트 초인종만 누르다 결국 돌아와야 했다고 한다